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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 숨결 따라 동학 길 따라》 펴낸 송범두 천도교 교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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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 숨결 따라 동학 길 따라》 펴낸 송범두 천도교 교령
  • 민창기 기자
  • 승인 2019.08.20 07: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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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책 소개부터 하자면…?

책 제목 그대로 고려인의 숨결 따라 동학의 원형을 찾아 떠났던 중앙아시아 기행 에세이다. 동학민족통일회 상임의장을 맡고 있던 2018년 1월 우즈베키스탄을 여행했다. 그곳에 사는 고려인들에게 동학 DNA가 살아 있을 거라는 믿음 속에서 떠난 여행이었다. 고려인은 동학 창도 초창기인 1864년 경 두만강을 건너 연해주로 떠났던 우리 민족이다.

그들은 1937년 스탈린의 강제 이주로 중앙아시아와 지금의 CIS 국가들로 흩어졌다. 우즈베키스탄을 여행하며 여러 고려인들을 만났다. 그들과 나눈 이야기와 우즈베키스탄 여행 이야기를 버무렸고, 여행하는 동안 틈틈이 떠오른 가족사 이야기며 내 지난 세월까지 회고담 형식으로 함께 담아낸 책이다.

귀중한 자료들도 여럿 소개한 걸로 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과거 자료들을 찾아봤다. 1920년대 초반 연해주 신한촌에 우리 천도교 교구가 있었다. 독립운동가로도 유명한 김치보 선생이 교구장이었는데, 당시 신문을 뒤져 블라디보스토크 교구 소속 연예단이 조선 내지 순회공연을 했다는 사실을 찾아냈다. 사실 1920년대 천도교 교세는 대단했다. 당시 조선 인구가 1,000만 명쯤 됐다. 그런데 천도교인 수가 300만 명가량이었다. 세 사람이 앉아 있으면 한 사람은 천도교인이었던 셈이다.

그런 교세를 바탕으로 <개벽> 창간 등 여러 근대 문화사를 주도했다. 고려인들이 20만 명가량이나 살고 있었던 연해주에서도 그런 역할이 많았으리라 본다. 그런데 1920년대 연해주와 만주 지방에서의 천도교 역할 연구가 많이 부족한 것 같다. 그 지역에서의 독립운동사 연구는 많다. 하지만 문화적으로도 제법 큰 역할을 했을 텐데 자료가 부족해 직접 찾아봤고, 그 내용들을 이번 책에 소개했다.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는가?

나는 책에서 고려인들을 ‘조선인으로 떠나 고려인으로 살다 한국인으로 만난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 말에 아쉬운 점이 있다. 고려인은 남북이 함께 감싸 안아야 할 150년 우리 민족 디아스포라의 거대 상징이다. 한국인으로 만난 사람이 아니라 겨레얼로 만남 사람이라고 고쳐 쓰고 싶다. 아마 2쇄부터는 그렇게 수정될 것이라고 본다.

북한에서도 천도교를 민족 종교로 인정한다. 북한 청우당을 통해 우리 천도교는 계속 남북 교류의 마중물 역할을 맡고 있다. 민족지도자인 독립운동가 최동오 선생께서 1920년 대 만주에서 독립군 장교 양성기관인 화성의숙 숙장을 맡아봤다, 그런데 김일성 주석이 그곳 생도였다. 그런 인연으로 북녘에서도 동학 천도교를 상당히 존중한다.

책에 그런 내용들도 일부 소개했다. 동학 정신을 기본으로 남북 모두가 각자위심(各自爲心)을 버리고, 동귀일체(同歸一體)의 정신으로 하나 되는 통일의 길로 나아가자는 메시지를 담아냈다.

끝으로, 이 시기에 책을 낸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건가?

그런 건 없다. 사실 진작 나와야 됐던 책이다. 하마터면 출판사에 위약금을 물어 줄 뻔했다.(웃음) 지난해 2월에 책을 계약하고, 상반기까지는 내기로 약속했던 책이다. 그런데 차일피일 미뤄져서 연말까지는 꼭 마무리하겠다고 했는데, 그 뒤에는 또 교령 선거가 있어 출판 의미가 퇴색될까봐 몇 달을 또 미루게 됐다. 출판사 측에서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통보를 받고 바짝 긴장해서 지난 7월 초 마지막 원고를 탈고하고, 이제야 책을 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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