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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칼럼]‘동학 천도교 방송’의 개국일을 고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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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칼럼]‘동학 천도교 방송’의 개국일을 고대하며
  • 조작_본지 편집위원
  • 승인 2019.08.18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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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인TV 방송 화면 캡쳐. 이 인터넷 방송은 한 천도교인이 사비를 들여 2017년 5월 개국해 8개월쯤 운영되다 자금 사정으로 중단됐다. 동학 천도교는 그동안 여러 차례 자체 방송국 설립을 계획했지만 번번이 무산되는 아쉬움을 남겼다. Ⓒ동학만리 자료 사진
▲동학인TV 방송 화면 캡쳐. 이 인터넷 방송은 한 천도교인이 사비를 들여 2017년 5월 개국해 8개월쯤 운영되다 자금 사정으로 중단됐다. 동학 천도교는 그동안 여러 차례 자체 방송국 설립을 계획했지만 번번이 무산되는 아쉬움을 남겼다. Ⓒ동학만리 자료 사진

이 땅에 첫 방송 전파가 발사된 것은 1927년이다. 천도교가 창간해 지금까지 발행하고 있는 월간 신인간 출범과 같은 해다. 그해 2월 16일 호출부호 JODK, 출력 1㎾, 주파수 690kHz로 개국한 경성방송은 이후 광복과 함께 KBS로 이관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텔레비전의 역사는 1961년부터 시작된다. 5.16 군사 반란 세력들이 그해 12월 ‘땡박 뉴스’를 만들어 자신들의 반란 획책을 정당화하기 위해 권총까지 들이밀며 개국을 서둘렀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그 뒤 1980년 전두환 정권에 의해 ‘컬러TV’ 시대가 개막됐고, 1994년부터는 일명 케이블방송이라고 불리는 ‘종합유선방송’ 시대를 열며 본격적인 다채널 변혁기를 맞게 됐다. 천주교, 기독교, 불교, 원불교, 증산교 등 여러 종교들도 이 같은 다채널 시대를 맞아 오랜 숙원이던 자신들만의 방송 채널을 갖게 됐다.

2000년대 들어 뉴미디어 환경은 다시 한 차례 요동쳤다. 인터넷의 등장과 스마트폰의 대중화로 이른바 1인 미디어 시대를 열게 됐다. 팟캐스트에 이어 지금은 ‘유튜버’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하며 1인 인터넷방송 전성시대를 열고 있다.

동학 천도교는 이 땅의 근대문화사를 주도했다. 1920년 6월 창간한 <개벽>이 문화 르네상스 재편의 중심이었다면, 1921년 완공된 천도교 중앙대교당은 그들 모든 콘텐츠의 산실 역할을 맡아왔다. 그리고 오는 9월 1일 100주년 기념식을 개최하는 천도교 청년회는 근대 문화를 반도 전역에 퍼뜨리는 전파자로 기능했다.

어느덧 이들 유무형의 근대 산파들이 줄줄이 100주년을 맞게 된다. 게다가 2022년은 동학 천도교 3세 교조인 의암 손병희 성사의 환원 100주년의 해다. 또 2023년은 어린이날 첫 행사를 치른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고, 그 다음해인 2024년은 수운 최제우 대신사가 탄생한 지 200주년을 맞는 기념비적인 해다.

이렇듯 뜻 깊은 시점에 ‘동학 천도교 인터넷 방송’의 개국 움직임이 있어 다행이다. 천도교 전위 단체인 동학민족통일회가 최근 <동학만리>를 창간하며 <동학TV>라는 메뉴를 선보였다. 또 일부 뜻있는 동학 천도교인들이 인터넷방송 개국을 위해 십시일반 기금을 모은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마침 지난 4월 1일 제57대 천도교 최고 지도자로 취임한 송범두 신임 교령도 문화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소식이다. 그는 지난 8월 14일 천도교 중앙대교당에서 있었던 역사 뮤지컬 공연에 앞선 인사말을 통해서도 ‘종교와 예술은 사람을 사람답게 살도록 하는 공통점이 많다’고 강조했다.

‘연꽃효과’라는 말이 있다. 연꽃이 만개하는 데 있어 반쯤 피울 때까지는 오래 걸리지만 나머지 반은 하룻밤 사이에도 만개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동학 천도교 방송’은 경성방송 시대로부터 지금까지 100년 가까이 멈칫 멈칫했다. 하지만 이제 물을 만난 시점이다. 이제 만개는 시간문제인 것 같다. 방송을 통해 주문 소리와 청수봉전가가 울려 퍼질 그날의 감동이 한 발짝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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