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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 연재]제4회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도시 히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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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 연재]제4회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도시 히바
  • 송범두_천도교 교령
  • 승인 2019.09.22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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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 숨결 따라 동학 길 따라》(송범두 지음, 라운더바우트 펴냄) 분재
▲히바 이찬칼라 내성 모습. 가운데 우뚝 솟은 탑이 이 유적지의 랜드마크인 45m 높이의 이슬람 훗자 미나레트다. 내성을 둘러싼 고대 토성에서 나는 신라시대의 성곽 모습을 읽게 됐다. 둘의 모습이 너무나 흡사했다. 책 본문 34~35p 사진
▲히바 이찬칼라 내성 모습. 가운데 우뚝 솟은 탑이 이 유적지의 랜드마크인 45m 높이의 이슬람 훗자 미나레트다. 내성을 둘러싼 고대 토성에서 나는 신라시대의 성곽 모습을 읽게 됐다. 둘의 모습이 너무나 흡사했다. 책 본문 34~35p 사진

오늘 예상 기온은 낮 최고 영하 6℃, 아침 최저 영하 16℃다. 바람이 많이 불어 체감온도는 영하 30℃도 넘을 것 같은 매서운 날씨였다. “좋은 계절 다 놔두고 왜 하필 이때냐”고 핀잔주던 아내의 잔소리가 생각났다.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한 고려인들에게 그 시절 어디 좋은 계절만 있었겠나?” 아내에게 내뱉은 내딴의 강변이었지만 입이 얼어붙을 정도의 추위 앞에선 살짝 후회가 밀려왔다.

“이곳 히바는 부하라(Bukhara), 사마르칸트(Samarkand)와 함께 우즈베키스탄의 대표적 3대 관광지 중 하나입니다. 한국으로 치자면 경주 같은 고도(古都)인데요, 특히 지금 우리가 와있는 이곳 이찬칼라(Ichan Kala)는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돼있을 만큼 국제적으로도 유명한 곳입니다.”

여행 가이드는 우리말이 제법 능숙한 고려인 4세였다. 입을 열 때마다 입김 한 움큼이 모락모락 피어올라 히바 동장군의 기세를 대변했다. 그는 우즈베키스탄 관광에 앞서 반드시 ‘쓰리 엠(3M)’부터 외워두라고 강조했다.

오늘 히바 관광은 물론 이후의 부하라와 사마르칸트 관광에서도 자주 듣게 되는 유적지 이름 대부분이 M으로 시작된다는 얘기였다. 말하자면 한국 관광지 이름마다 따라붙는 사·성·궁(寺·城·宮) 같은 개념이 곧 우즈베키스탄의 3M이라고 말해 ‘관록 있는 가이드답다’는 믿음을 안겨줬다.

그가 소개한 첫 번째 M은 모스크(Mosque)로 이슬람 사원이다. 그리고 두 번째 M은 미나레트(Minaret)로 모스크 곁에 붙은 일종의 첨탑이다. 교회 종탑처럼 예배 시각을 알려주는 기능 외에도 모스크의 위치를 알려주는 상징탑 역할까지 하고 있다. 그리고 나머지 또 다른 M은 메드레세(Medressa)로 대강당과 도서관, 교실, 개인용 공부방 등을 갖춘 이슬람 교육 시설이다.

“이곳 이찬칼라 내성 안쪽엔 20개의 모스크와 20개의 메드레세, 그리고 6개의 미나레트가 잘 보존돼있습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모스크는 주마 모스크(Juma Mosque)로 이찬칼라 모스크들 중 역사가 가장 오래됐습니다. 10세기 때 처음 지어졌습니다.

이따 직접 가서 보시면 알겠지만 3m 간격으로 세운 내부 기둥들이 참 인상적인데요, 제가 다 세어보지는 못했지만 기둥 수가 212개라고 합니다. 그리고 가장 유명한 미나레트는 이슬람 훗자 미나레트(Islam Khoja Minaret)인데요, 높이가 45m나 돼서 이찬칼라 어디서든 이 첨탑을 볼 수 있습니다.

또 메드레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곳은 모하마드 라힘칸 메드레세(Muhammand Rahimhan Medressa)인데요, 개인 공부방이 76개나 되는데 공교롭게도 이 메드레세가 1876년에 완공돼 76개라는 숫자를 기억하기가 좋았습니다.”

이제 직접 현장 답사를 시작하자는 가이드의 말에 따라 목도리를 다시 한번 추슬렀다. 햇살이 들면서 맹추위가 한풀 꺾이긴 했지만 동장군의 기세는 여전했다. 제법 두껍게 차려입은 외투 속으로 시베리아 한파가 비집고 들어오며 가뜩이나 작은 체구를 더욱 작게 만들었다.

작은 거인 범두, 어깨를 펴라! 입으로는 이렇게 외쳤지만 1분도 안 돼 다시 움츠러드는 고희(古稀)의 발길이 무거웠다.

중앙아시아는 고려인의 아픈 역사 이전에 이슬람을 먼저 알아야 관심이 돋는 문명적 교차로다. 다른 무엇보다 역사 공부에 재미를 붙였던 나로서는 일찍부터 이 지역에 눈길이 갔다. 특히 우리로선 통일신라시대에 해당하던 751년 이 지역엔 돌이킬 수 없는 역사적 변곡점이 찾아왔다.

이슬람 세력과 맞섰던 당나라가 탈라스 전투에서 패하며 중앙아시아 전역이 이슬람 문명권으로 재편됐다. 751년은 마침 신라 대상 김대성이 불국사를 창건했던 그해다. 따라서 기억하기에도 좋은 연표였다.

“맨 그게 그거 같아 재미가 없어.”

앞서가던 일행 중 한 사람이 옆 사람을 보며 투덜댔다.

“그러게 말이여. 날씨까지 추우니까 더 재미가 없구먼. 이 모스크나 저 모스크나 사진 찍어봤자 똑같고, 메드레세인지 맨살드레스인지 그것도 거기가 거기 같으니까 이제 그만 돌아가면 좋겠구먼.”

옆 사람의 투덜거림은 더 심했다. 그의 불평을 듣던 또 다른 옆 사람은 그보다 한술 더 떠 이슬람 종교까지 타박해 듣기조차 민망했다.

“교회 집사가 돼서 이거 다른 종교 성지 순례나 하고 있으니 하늘이 더 노하신 것 같아. 얘기 듣자니까 어제까지는 이렇게 춥지 않았다는구먼. 이런 유적지들 말고 사진 찍어갈 만한 좀 더 근사한 데 없느냐고 당장 가서 가이드한테 물어봐야겠어.”

아마 우리나라로 여행 온 서양 관광객들도 일부는 저렇겠다 싶어 내심 이해되기도 했다. 불국사를 보나 해인사를 보나 통도사를 보나 그 절이 그 절 같고, 경복궁을 보나 덕수궁을 보나 창경궁을 보나 그 궁이 그 궁 같으리라.

하지만 이곳이 이슬람 국가라는 사실을 알면서 온 건지 모르고 나섰는지 다른 종교 운운은 아무리 생각해도 동의할 수 없는 몰상식 자체였다. 순간 천도교 가리산수도원을 찾는 비신자들에게 다른 종교를 존중해야 그것이 옳은 일이라고 강조하시던 조동원 종법사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우리가 한자리에 앉으면 마음이 똑같습니다. 오심여심을 찾아야 서로 외롭지 않고 서로 힘들지 않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어디에서 만나든 ‘나와 같은 천도교가 아니야, 나와 같은 불교가 아니야, 저 사람 다른 종교야, 기독교래, 불교래’ 이러는 거 절대로 못 쓰는 겁니다. 어떤 종교라 하든지 반가워서 손잡고 끌어안으며 형제처럼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그분도 어느덧 90을 넘겨 망백(望百)의 새해를 맞으셨는데 문안 인사도 못 드리고 길 떠나온 죄송함이 갑작스레 밀려왔다.(계속)

[편집자 주]송범두 천도교 교령이 2019년 8월 1일 출간한 《고려인 숨결 따라 동학 길 따라》 책 내용을 분재 형식으로 엮어나가고 있습니다. 출판 콘텐츠를 사용하도록 허락해준 저자와 출판사 측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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